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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국제 신문, 1999 년 제 1 차 논픽션 공모 당선작 (우수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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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의 원래 제목은 "표준 영어를 안 쓰는 런던 사람들" 이었지만,
국제 신문에 나올 때는 "런던 체류 1 년" 으로 나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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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체류 1 년 (200 자 원고지 약 60 매)

    런던에는 개똥이 많다.  1997 년 여름부터 한 해 동안 런던에 살게 되었는데, 
처음 가서 집을 정하고 돌아 다니다가 가장 먼저 느낀 게 주택가에 개똥이 많다는 
것이다.  그 뒤로는 길을 오갈 때 아래를 잘 보고 다녔고, 공원에서 앉을 때도 
조심하게 되었다.  개가 오죽 아무데나 똥을 싸게 했으면, 개똥을 치우라는 
표지판이 크게 서 있을까.  도로 옆에 개똥 치우시오 라는 큰 표지판은 런던에서만 
보았다.  민주주의가 일찍부터 발달한 나라라는 막연한 선입관을 가지고 좋게만 
생각하고 갔는데, 나를 처음으로 반긴 것이 개똥이라니 좀 고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 안내문을 보면 개를 데리고 타는 것은 좋은데, 자리에 앉히지는 말고 
바닥에 두라고 한다.  그런데, 이를 지키지 않는 사람도 있다.  개가 자리에 앉는 
걸 한 번 보고 난 뒤로는 버스에 앉을 때 '여기도 개가 앉았던 자리일까' 하는 
생각이 가끔 들곤 했다.

    런던의 초등학교는 한 학년이 보통 두세 반이다.  한 반에는 서른 사람 안팎.  
둘째 애 두리가 간 학교는 한 학년이 한 반뿐이었다.  그러니 학교 전체 학생 수가 
이백 명도 채 되지 않아 전교생이 거의 다 알고 지내며, 새로 온 애는 전 학년 
교실을 다니면서 인사를 한다.  우리 나라의 시골 아담한 분교쯤밖에 안 되는 그런 
조그만 초등학교가 동네마다 있다.  교장 선생님도 전교생을 거의 다 안다.  
나로서는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이다.  조그만 초등학교 - 이것도 참 
괜찮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고등학교는 우리 나라처럼 학급 수가 많다.  첫째 애 해솔이는 영어를 잘 
하지 못하였는데, 그런 학생들을 위하여 보조 교사가 수업 시간에 학생 옆에 
앉아서 도와 주었다.  그렇게 처음 한두 해를 집중적으로 도와주면 점점 혼자 해 
나가는 힘이 키워지며, 그 뒤로는 시간을 조금씩 줄이면서 계속 도와 주게 된다.  
합리적인 방식이라 생각하였다.
    학기마다 한 두번 발표회를 하고, 학기가 끝날 때는 학생마다 15 분쯤씩 담임 
및 학과 선생님과 만나서 학생의 발달 상황에 대하여 얘기한다.  촌지란 전혀 
없어서 아무 부담없이 갈 수 있어서 좋았다.  다만, 학교 시설등을 위하여 
기부금을 공개적으로 받거나, 학생이 책을 사면 그 일부가 출판사에서 다시 학교로 
오므로 책을 사라고 홍보하는데, 그런 것은 많아야 몇 만원이며, 눈치가 안 보이기 
때문에 안 사고 싶으면 안 사도 된다.  촌지없는 학교 - 런던은 그런 곳이었다.  
정말 너무 너무 부러웠다.
    그런데 애가 교과서를 집에 가지고 오지 않아서 뭘 배우는지 알 수가 
없었는데, 부모 면담 때 본 애의 공책 내용은 체계적이고 구체적이어서 깜짝 
놀랐다.  준비물이 많은 우리 나라와 달리 준비물도 별로 없었다.  숙제가 조금 
있지만, 책이 없어도 되거나, 아니면 도서관에 가서 책을 찾아보고 하는 숙제이다.  
학교 바로 옆에 공공 도서관이 있고, 일주일에 한 번씩 반 학생들이 단체로 
도서관에 가서 빌렸던 책을 돌려 주고, 또 책을 새로 빌리게 한다.  그러니 
도서관과 저절로 친해지게 된다.
    동네마다 조그만 도서관이 있었다.  사실 큰 도서관이 몇 군데 있는 것 보다는 
작은 도서관이 여러 군데 있는 게 주민들에게 도움이 된다.  또한 학교 숙제 
가운데 도서관에 가서 해야 할 것도 많다 보니, 도서관은 늘 아이들로 붐볐다.  
그런데, 영국에서는 도리어 외우기를 강조하는 아시아쪽의 교육이 더 낫지 않은가 
하여 관심을 가진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 외우기를 강조하기 보다는 도서관을 
찾게 하는 그들의 교육 방식이 창의성을 기르기 때문에 나은 것으로 보였다.  물론 
구구단을 잘 외우지 못하는 영국 학생에게는 외우기를 강조해야 하겠지만.

    그 전에 미국에 10 년 살았는데, 영국 고속도로도 미국과 비슷하겠지 하고 
막연하게 생각하면서, 처음 고속도로에 나갔다가 낭패를 보았다.  미국은 안내 
표지판에 동네나 도시 이름뿐 아니라 동서남북 표시가 잘 되어 있기 때문에, 처음 
가는 곳이라도 방향으로 쉽게 찾아 갈 수가 있다.  그런데, 영국은 안내 표지판에 
지명으로만 나와 있어서 방향을 잡기가 어려웠다.  갈림길에서 지명을 보고 
짐작해서 길을 잡았는데, 삼십분쯤 갔는데도 아는 데가 안 나오고, 드디어는 
개트윅 공항 안내판이 나왔다.  그건 런던의 남쪽에 있는 공항인데 집이 있는 
북쪽과는 정반대 방향이다.  그래서 길을 거꾸로 다시 왔다.
    영국 고속 도로 표지판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좀 불편하였다.  첫째, 고속도로 
안내판이 모두 지명으로만 나와 있고 동서남북은 나와 있지 않다.  둘째, 지금 
가고 있는 도로가 몇 번 도로인지, 또한 동서 남북 어디로 가는지 (우리 나라 
식으로 말하면 상행과 하행 가운데 어느 것인지) 거의 나와 있지 않았다.  
논리적이고 합리적일 거라고 생각했던 영국에서 이와 같이 어처구니 없는 일을 
당하고 나니 얼떨떨하였다.  돈 문제인가?  아니면 생각의 차이인가?  프랑스에 
갔더니, 도로 번호도 잘 나오고 표지판 등에 동서남북이 잘 나와 있었다.
    영국은 차가 왼쪽으로 다닌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두어달 지나니 
자연스러워졌다.  그런데, 프랑스에 갔다 왔다 하면 잠깐 동안 혼란이 일어난다.  
도버에서 배를 타고 한 시간 반쯤 가면 프랑스 깔레에 닿는다.  배에서 내려 
운전할 때 처음에 잠깐 이상하지만 곧 익숙해진다.  주로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았거나 영연방과 관련있는 나라 (싱가포르, 홍콩 등 열 나라쯤) 가운데는 차가 
왼쪽으로 다니는 데가 있는데, 그런 곳의 운전 면허증을 가진 사람은 시험을 치지 
않고도 영국 운전 면허증을 받을 수 있다.  우리 나라 운전 면허증이 있으면, 굳이 
국제 운전 면허증이 없더라도 1 년은 유효하다.
    영국의 옛날 영화는 지나갔지만, 그래도 우리와 견주어 보면 선진국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는데, 사람 다니는 길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우리 나라는 사람 
다니는 길이 따로 없는 데도 많고, 더욱이 차가 아무렇게나 인도에 주차하는 
바람에 사람은 위험하게 찻길로 다니는 어이없는 일이 날마다 일어나고 있다.  
영국에는 주택가까지도 거의 모두 인도가 잘 구분되어 있어서 잘 가꾸어진 정원을 
보면서 안심하고 다닐 수 있었는데, 선진국의 모습으로 보였다.
    런던 중심 도로변의 주차 규정은 내가 본 주차 규정 가운데 가장 심한 
것이었다.  일단 한 번 주차했다가 떠나면 일정 시간 안에는 돌아오지 못한다.  더 
심한 건, 일단 한 번 돈을 넣고 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돈을 더 넣어서 주차시간을 
늘이지 못한다.  이것을 어기면 그건 곧 벌금 대상이었다.  

    영국의 의료 보험을 보면 유럽 사회주의라는 것이 이렇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일단 영국에 살면 저절로 국민 의료 보험 (NHS) 이 된다.  동네마다 의사 사무실과 
치과 의사 사무실이 어찌나 많은지.  살던 집에서 대여섯 집 건너서도 의사 
사무실이 있고, 길 건너서도 있었다.  우리 식으로 하면 1 차 의료 기관이다.  
아프면 일단 여기로 가는데, 여기서는 수술 같은 것은 안 하고, 그냥 의사가 
진찰만 주로 한다.  피 검사, 방사선 사진 등이 필요하다거나 수술을 해야 하면 
소견서를 붙여서 큰 병원으로 보낸다.  이 모든 것이 돈이 안 든다.
    어른의 경우 약값은 본인이 일부 부담하지만, 어린애와 학생들은 약값도 
거저이다.  학교 시력 검사에서 두리더러 정식 검사를 받으라고 하여 의사에게 
검사를 받았더니, 근시라고 하였다.  그런데 안경의 경우도, 어린이들은 처방전을 
가지고 안경점에 가면 완전히 공짜로 안경을 맞춰 준다.  안경이 부서질 것에 
대비하여 얼마 뒤에 안경을 하나 더 주는데, 우리는 곧바로 이사오는 바람에 
두번째 것은 받지 못하였다.  어린애와 학생들을 보호하려는 그들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어린이 보호가 이와 같이 구체화되지 못할 때, 어린이 헌장 따위는 부도 
수표일 뿐이다.

    영화 같은 데서 영국식 억양이 미국식과 다르다는 것은 알고 갔지만, 막상 
가서 보니 그건 단순히 억양 문제가 아니어서 충격을 많이 받았다.  보통 런던 
사람들의 억양은 미국식과 아주 다른데 견주어, 텔레비젼에서는 미국식 억양과 
그렇게 다르지 않았다.  이 이유를 알아내는데 한참 걸렸고, 그 이유를 알고 
나서는 영국은 신분 사회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국에서는 말을 들어보면 곧바로 그 사람의 사회 경제적 지위를 짐작할 수 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사립 학교 졸업생은 출신 지방에 관계없이 표준 영어 (RP, 
received pronunciation) 를 쓴다고 한다.  표준 영어는 텔레비젼에 많이 나오며, 
미국식 억양과 그렇게 많이 다르지 않다.  고등 교육을 받지 않아서 표준 영어를 
쓰지 않는 사람들의 말에서는 출신 지방의 억양이 드러난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우리 나라는 서울에 살면 표준말을 저절로 배워서 쓰게 되는데 영국은 전혀 
그렇지 않다.  런던 지방 사투리를 코크니 (cockney) 영어라고 하는데, 이건 표준 
억양과는 전혀 다르다.  대학교에서 교수나 사무 직원의 영어는 좀 알아 듣기 
쉽지만, 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코크니를 쓰기 때문에 거의 알아 들을 수 없었다.
    영어 억양과 관련된 얘기 두 편.  고등 교육을 받고 잘 살다가 2 차 대전 시절 
몰락한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은 다른 사람들보다 임시 일자리를 아주 쉽게 구할 
수 있었다.  그 비결은 바로 말씨였다.  취직 면접을 하면 몇 마디만 듣고도 벌써 
'아, 이 사람은 고등 교육을 받았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고, 그래서 취직이 
쉬웠던 것이다.  또 한 사람은 미국으로 이민간 영국 출신 작가인데, 그 사람이 
'미국에 오니 말씨 때문에 신경쓸 일이 없어서 너무나 자유롭고 좋다' 라고 
하였다.  말씨 (억양) 에서 사람의 사회 경제적 지위가 곧바로 드러난다면 고등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은 정말 살기가 불편하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사투리에서 
출신 지방만 드러나는 우리 나라가 살기 좋은 나라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산 사람이 서울가서 좀 살았다고 완전히 서울 말씨를 쓰면 옆 사람들이 
핀잔을 주듯이, 영국에서는 자기가 속한 부류의 사람들이 쓰는 억양을 써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그 패거리에서 받아 들여주지를 않는다.  그래서 어느 지방 
출신이든지 고등 교육을 받게 되면 표준 영어를 배워서 써야 하는데, 런던 
토박이도 표준 영어를 따로 배워야 하는, 우리로서는 잘 상상이 안 되는, 일이 
벌어진다.  한편, 교육 수준이 좀 낮은 사람은 표준 영어를 쓰고 싶어도 동료들의 
눈치 (peer pressure) 때문에 쓰지 못하고, 그 대신 자기가 속한 사회의 사투리를 
써야 한다.  이게 신분 사회, 계급 사회의 흔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래 저래 영국 사람들은 말 때문에 마음 고생이 있는 듯했다.
    런던에서 재미있는 영어 발음법 한 가지.  런던에 처음 가서 버스를 타면서 
차비를 물으니 "아이티 피" 라고 했다.  p 는 pence 를 나타내니, 그 앞에는 수를 
나타내는 말이 나올텐데, '아이티, 아이티',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eighty 를 아이티라고 말한 것인데, 런던 (코크니) 사투리는 
"에이" 를 "아이" 처럼 들리게 소리내었다.  pay 는 파이, mail 은 마일, today 는 
투다이.  How much do you pay today? 를 한 번 읽어 보면 재미있을 것이다.
    영국식 표현은 미국식과 다른 때가 더러 있는데, 살면서 느낀 것 몇 개.  영국 
약국에는 dispensing chemist (조제하는 약사라는 뜻) 라는 간판이 있다.  (미국은 
pharmacy 를 쓰며, chemist 는 화학자이다).  이사올 때 이사짐 회사를 찾으려고 
yellow page (전화 번호부의 광고 부분) 에서 moving 을 찾았더니 나오지 않았다.  
나중에 영국 사람에게 물어보니, removal 이라고 했다.  remove 는 없애다라는 뜻 
말고도 re-move 라고 하여 다시 움직이다, 옮기다 라는 뜻도 있다.  replace 가 
바꾸다 말고도 re-place 라고 하여 제 자리에 두다라는 뜻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미국에 처음 가서 전혀 보지도 못했던 사람이 길에서 날 보고 웃으면서 hello 
했을 때 당황해하였다.  그런데, 영국에서는 그 반대로 얼굴을 서로 잘 알면서도 
아는 채 하지 않아서 또한 당황해하였다.  학교 학부형끼리 얼굴을 빤히 아는데도 
길에서 만나면 모르는 채 하는 수가 많다.  영국은 누가 중간에서 소개하여 인사를 
트지 않으면 남남처럼 대한다.  그렇다고 하여 미국 사람이 좋고, 영국 사람이 
나쁜 건 아닌 듯 하다.  다만 표현 방식이나 문화가 다른 것 같다.  실제 미국 
사람들은 아무나 보고도 친절한 듯 하지만, 또 별 관련이 없다 싶으면 잘 알던 
사람도 그냥 모르는 척 하고 지나가기도 한다.  그에 견주어 영국 사람은 속에 
깊은 정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두리는 초등학교 3 학년에 들어가서 
처음에는 영어도 잘 못하고 친구도 별로 없어 고민하였다.  노는 시간에 혼자서 
걸어 다녔다는 얘기를 들으면 가슴이 아팠다.  몇 달이 지나자 친구도 생기고 학교 
생활을 좋아하였다.  그런데, 올 때가 되자, 둘째 애와 같은 반의 어떤 학생 
어머니가, 반 아이들이 한 명씩 돌아가며 우리 애에게 작별 인사말 하는 것을 
녹음하여 선물로 주었다.  이런 것을 보면, 영국 사람들이 비록 인사를 잘 하지는 
않지만, 그들의 마음까지 차갑지는 않다고 보며, 어쩌면 미국 사람보다 속의 깊은 
정은 더 있을지도 모른다.

    미국에는 항상 가게에 물건이 넘쳐 나며, 할인 판매도 자주 하고, 직원은 
친절하여 손님은 왕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영국에는 물건 공급이 빠뜻하여, 
철에 맞추어 물건을 제때 사지 않으면, 그 뒤로는 잘 살 수도 없다.  또한 
직원들은 뻣뻣하기 짝이 없다.  꼭 우리 나라 직원들이나 공산 국가 직원들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런데 어떻게 생각해 보면, 영국 사람처럼 뻣뻣한 것이 더 
인간답게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미국은 월급을 받기 위하여 직원은 손님에게 
절대 친절하지 않으면 배겨나기가 힘든 사회이고, 어찌 보면 돈이 인간을 비굴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영국 가게 직원은 너무 뻣뻣해 보이며, 조금은 
부드럽고 친절해져야 할 것이라고 본다.
    미국은 24 시간 영업하는 가게도 꽤 있고, 보통 가게도 저녁 9:00 쯤까지 하는 
데는 많다.  그렇지만, 영국 (일반적으로 유럽이 전반적으로 그렇지만) 은 저녁에 
5:30 - 6:00 쯤에 거의 모두 가게문을 닫으며, 식품 파는 곳만 9:00 쯤까지 한다.  
처음에는 이것이 아주 불편했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좋은 점도 있었다.  
소비자를 위한다고 24 시간 문을 열지만, 이렇게 함으로써 직원의 가족은 같이 
보낼 수 있는 시간이 그만큼 줄어들며, 가정이 그만큼 허물어지는게 아닐까 한다.  
미국에서도 일요일 영업을 못하게 하는 주가 조금 있었는데, 종교적인 것을 떠나서 
나름대로 좋은 면도 있다고 본다.

    영국의 골치아픈 문제 가운데 하나가 북 아일랜드이다.  이건 참 풀기 어려운 
문제로 보였다.  영국은 아일랜드 섬을 오랫 동안 식민 지배하면서 북 아일랜드에 
영국 사람들을 이주시켰다.  나중에 아일랜드 나라가 독립했지만, 이미 북 
아일랜드 지방에는 영국 사람도 꽤 많이 건너가 살고 있어서 그 지방은 민족 
분쟁이 일어났다.  특히 아일랜드는 구교, 영국은 성공회이기 때문에, 북 아일랜드 
문제는 종교 분쟁이기도 하다.  일제때 일본 사람이 부산에 많이 들어와 왔다가, 
일제가 패망한 뒤에도 부산은 일본 땅으로 남게 되고 일본 사람들은 부산에 그대로 
남게 된 뒤, 부산에 있는 우리 나라 사람과 일본 사람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는 
상황을 상상해 보면 북 아일랜드 문제는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번은 아일랜드에 큰 기근이 생겼는데, 이 때 영국은 전혀 도와주지 않았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으며, 그 앙금은 아직도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남아 있다고 
한다.  북쪽이 굶주리고 있는 이 때,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교훈이 되지 않을까 
한다.
    우리에게도 북 아일랜드와 비슷한 상황이 일어날 수도 있다.  간도 지방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나라 땅이었고 우리 나라 사람이 많이 살고 있었는데, 
요즘에 와서 중국이 중국 사람들을 많이 이주시키는 바람에, 요즘은 간도 지방에 
중국 사람이 꽤 많다.  만일 우리 나라의 힘이 세어져서 간도를 찾고자 한다면, 북 
아일랜드와 비슷한 상황이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런던의 서민들 집을 보면 어찌 그리 모양이 비슷한지.  이층 집이고, 창마다 
하얀 레이스 커텐이 있고, 한 집의 땅 넓이는 50-60 평 안팎쯤.  그리고 꼭 같은 
모양의 집이 두 집, 세 집, 더러는 대여섯 집이 벽을 같이 하여 붙어 있다.  그 
때문에 아마 난방비는 아낄 수 있을 것 같지만, 붙어 있는 집이 한꺼번에 모두 
허물고 새로 집을 짓는 건 쉬운 일이 아닌 듯 하다.  그래서 그런지 런던에는 100 
년쯤된 가정집이 많았다.  특히 벽돌 집이라 단단하기 때문에 오래 쓰기도 
하겠지만, 일이십 년 살다가는 허물고 새로 짓는 우리들과 달리, 집을 고치면서 
오래 쓰는 그들의 생활에서 우리와는 다른 면을 보게 된다.  1 년 동안 달세를 
살았는데, 집 주인은 반드시 세든 사람을 위해 각종 보험을 들어야 하였다.  이런 
것이 선진국의 모습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런던의 지하철은 유명하다.  우선 온 누리에서 가장 처음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기술은 옛날 것이다.  철로 신호 체계만 해도 요즘과 달리 오래된 기술이라 
얼마나 많은 가닥이 철길 옆으로 쭉 따라 가고 있는지.  노선이 스무 개쯤 되는데, 
어떤 차량은 깨끗하지만 어떤 차량은 정말 너무 낡아서 바닥이 내려다 보이기도 
하고 또 제동 장치에서 나는 타는 듯한 단내가 열차 안으로 물씬 풍겨 오기도 
한다.  지하철 안에서 표정없이 앉아 있는 런던 사람들.  우리 같으면 그런 낡은 
지하철에 탔으면 이에 대한 비난이 틀림없이 터져 나오련만, 그들은 가만히 
있었다.  이를 어찌 받아 들여야 할 지 잘 알 수 없었다.  지하철 안에는 먹다 
남긴 음식 찌꺼기, 깡통, 휴지 등의 쓰레기가 어지러이 있다.  우리 나라도 
쓰레기가 많지만, 우리보다 좀 심한 듯 하였다.
    영국에는 키큰 사람도 많은데, 버스와 지하철 천장이 낮아서 키큰 사람들은 
애를 먹었다.  또한 지하철이나 버스의 등받이가 너무 낮고, 발을 두는 데가 너무 
좁아서 아주 불편했다.

    런던의 물가는 높기로 유명하다.  특히 IMF 를 영국에서 맞은 우리 가족의 
심적, 경제적 타격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런던 생활비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홍콩, 도꾜에 이어 세 번째였는데, 엔화가 약해지고 파운드는 강해지면서 
도꾜를 누르고 두 번째가 되었다.  1 파운드가 1.7 달러인데, 미국에서 1 달러짜리 
물건이 영국에서는 1 파운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물가가 비싸다.  그 가운데서도 
교통비는 너무 비싸다.  지하철은 1 에서 6 구역까지로 나뉘어져 있는데, 한 번 
타면 기본이 2,500 원쯤 (1 파운드=2,500 원 기준).  9:30 이후에 1-4 구역과 
버스를 마음대로 탈 수 있는 하루 승차권은 10,000 원쯤.  시내 버스를 하루 종일 
탈 수 있는 버스 승차권은 5,000 원쯤.  가난한 나라에서 온 유학생은 차비가 너무 
비싸서 학교에 매일 가지도 못한다는 말이 나오는데 웃을 일이 아니다.  유럽 
나라를 다녀보니, 우리 나라의 지하철, 기차, 버스 등 요금이 너무 너무 싸다는 
것을 느낀다.  영국에 견주어, 그리스와 에스빠냐는 물가가 많이 싸다.  그래서 
영국 사람들은 그 곳으로 휴가를 잘들 간다.
    영국은 새 차나 중고차 값이 모두 끔찍하게 비싸다.  5 년된 1.8 리터 
폭스바겐을 1,000 만원에 주고 샀다가 올 때 750 만원쯤에 팔았다.  나에게는 그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신문 기사를 보고 나서 알게 
되었다.  딜러들이 담합하여 영국에서는 그냥 비싸게 판다는 것이다.  심하게 
말하면 영국 사람들은 차값이 비싸도 아무 불평없이 다들 사서 쓰는데 일부러 값을 
내릴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떤 언론사에서 가짜로 자동차 판매 
회사를 영국과 가까운 프랑스에 세울텐데 자동차를 싸게 공급해 주겠느냐고 
물어보니, 자동차 회사 직원들이 웃으면서 안 된다고 했단다.  그 언론사는 그 뒤 
자동차 회사에 전화를 걸어, 사실은 자기들은 언론사인데 왜 공급을 거부했느냐고 
묻자, 그들은 당황해하면서 그런 적이 없다고 했다 한다.  이런 걸 보면서, 
영국에는 과연 소비자 권리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국 역사에 관한 책을 보면, 일찌기 영국이 로마의 지배를 받았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 쓰면서, 그 때를 영국 역사의 처음으로 보는 듯 하였다.  우리는 
다른 나라의 지배를 부끄럽게 생각하는데, 영국은 그렇지 않은 데 좀 놀랐다.  
로마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은 돈과 무게를 나타내는 기호에도 고스란히 스며 
들어 있다.  영국 돈은 파운드와 펜스를 쓴다.  그 전에는 실링이 있었지만, 1971 
년부터 실링이 없어지고, 1 펜스 (보통 피 (p) 라고 많이 읽는다) 는 100 분의 일 
파운드로 바뀌었다.  그런데  100 에서처럼 금액 앞에 파운드를 나타내는   자는 
Libra 의 첫 글자에서 왔는데, Libra 는 옛날 로마의 무게 단위이다.  또한, 
영국의 무게 하나치인 파운드를 lb 로 나타내는데, 이것 또한 Libra 에서 왔다.  
파운드 (pound) 를 나타내기 위하여, 파운드와는 소리가 전혀 다른 리브라 (Libra) 
에서 온 글자인   이나 lb 를 쓰고 있는 것이다.  현재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 
세를 E II R 로 나타내는데, 여기의 R 은 여왕을 나타내는 라틴 말 Regina 이며, 
국왕은 R (Rex) 로 나타낸다.  우리 나라에도 아직 한자 잔재가 남아 있듯이, 
영국에도 라틴말 잔재가 더러 남아 있었다.

    런던의 남쪽에 있는 한인 동네 뉴 몰던 (New Malden).  어떤 회사의 런던 
지사에 부임해 가자 전임자가 말하길, '한 해에 히스로 공항에 몇 십번 갈 각오를 
하라' 고 하더란다.  미국은 넓기도 하고 교포도 100 만명쯤으로 많은데 견주어, 
런던은 교포라야 기껏 만 명도 채 안 되는데도 오는 사람은 엄청나게 많다.  
그러다 보니 한 사람이 책임져야(?) 할 관광객 수가 엄청나게 많을 수 밖에 없다.  
나도 처음 갈 때 그 친구가 히스로 공항에 마중나왔지만, 그 뒤로는 될 수록 
신세를 지지 않으려고 했다.
    런던을 여행할 사람들이 알아 두면 좋은 이야기.  손님이 많다 보니, 런던에 
한국 사람이 하숙집을 하는데 런던을 여행하는 사람은 여기를 활용하는 게 괜찮을 
듯 하다.  우리 식 아침과 저녁밥과 하루밤 자는데 한 사람이 8 만원쯤.  런던에 B 
& B (Bed and Breakfast) 라고 하여 싸게 잘 수 있는 데가 한 사람이 하루 밤에 6 
만원쯤.  밖에서 끼니를 사 먹으면 그 값도 만만하지 않다.  우리는 네 식구가 
가서 처음에 집을 구하기 전에 하루에 20 만원씩을 주고 며칠을 묶었다.  프랑스 
빠리에도 이와 비슷한 한국 하숙집이 있는데 가보지는 못했다.

    런던에 일 년밖에 살지 못한 내가 영국을 깊이 알지는 못한다.  다만 겉으로 
느낀 것은, 민주주의가 일찍 발달했다고 역사책에서 배운 것과는 달리, 일반 
서민들의 권리는 그렇게 발달해 있지 않은 듯 했다.  사실 영국에서 민주주의 
발달은 왕과 귀족들의 권력 다툼에서 왕이 절대 권력을 가지지 못하고 귀족들의 
권리가 많이 늘어났을뿐 서민의 권리는 뒷전이 아니었는가 한다.  아직도 여왕과 
왕실, 그리고 귀족이 있는 나라.  그런데 영국 국민은 전반적으로 왕실을 그대로 
두는 것을 찬성한다고 한다.  왕이 없는 나라에서 자란 나는 돈만 들어가는 왕실을 
왜 두어야 하는지 잘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겨우 한 해 있었는데도 왕실과 
다이애나의 열렬한 팬이 된 두 딸을 보면 왕실이 쉽게 없어질 것 같지는 않다.  
우스개인지 진짜인지 모르지만, '왕실 때문에 관광 수입이 얼마인데 왕실을 없애' 
하는 말도 있다.  이 승만 전 대통령은 일제 때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자기를 
왕가의 친적으로 소개했으며, 해방이 된 뒤에는 혹시나 조선 왕조 후손이 와서 
왕정 복고가 될까봐 걱정하여 왕가 사람들이 일본에서 돌아오는 것도 막았다고 
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미국의 덕분(?) 에, 우리는 해방이 되고 나서 더 이상 
왕실이 힘을 쓰지 못하게 되었다.

    영국은 전산화가 좀 덜 된 듯 하였다.  처음에 가니, 일 주일 안에 경찰의 
외국인 등록처에 가서 외국인 등록을 하라고 했다.  나는 가면서 '한 시간 안에 
끝내고 나서 밥을 먹고 시내 구경을 해야지'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현관에 
들어가면서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줄은 삥삥 돌아서 어찌나 길던지.  
하는 수 없이 아내와 나는 교대로 밖에 나가서 점심까지 먹으면서 기다렸다.  두세 
시간을 기다린 끝에 창구에 가 보니, 모두 손으로 쓰기만 할 뿐, 전산화가 전혀 안 
되어 있었다.  그 넓은 사무실에 피씨가 아예 보이지를 않았다.  난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 그렇게 시간이 걸릴 수밖에...  이미 이런 데 익숙한 듯한 한국 
사람 한 사람은 아예 빵을 들고 와서 줄에 서서 먹고 있었다.

    화려했던 옛날의 영국은 흔적만 남아 있고, 요즘 영국은 관광과 영어 배우러 
오는 사람들로부터 많은 수입을 올리는 듯 하다.  런던 시내는 늘 관광객으로 
붐빈다.  또한 영어를 배우러 오는 사람도 많은데 특히 유럽에서 많이 온다.  
캠브리지 대학 주관의 영어 자격 시험을 준비하는 영어반이 각 대학 (전문대?) 
이나 학원에 엄청나게 많고 등록생도 많다.  미국은 부자 나라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평생 교육 차원에서 영어를 잘 모르는 다른 나라 사람에게 돈을 거의 받지 
않고 가르쳐 주는 데가 많다.  영어를 배우러 오는 사람 가운데는 오 페어 (au 
pair) 로 오는 사람도 많다.  스무 살 안팎의 젊은 여자들이 많은데, 가정에 
들어가서 숙식을 제공받고, 애도 보고 집안 일도 거들면서 돈을 조금 받는 것이다.  
이렇게 온 사람은 1 년이 지나면 보통 돌아가는데, 동유럽에서 온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지 남으려 한다.

    그 전에 10 년 동안의 미국 생활과 더러 해 본 다른 나라 여행 경험을 
바탕으로, 한 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보고 느낀 런던의 재미있는 얘기를 써 
보았다는데, 잘못 알고 쓴 것이 있지나 않은지 걱정된다.  낮 2 시가 조금 넘으면 
곧바로 어두워지던 겨울날, 런던의 이층집에서 영국식 차를 마시던 생각이 난다.  
*   *   *   *





당선 소감,    김 경석 (부산대 전자계산학과)

  전산 관련 글은 더러 발표했지만, 논픽션 글이 뽑히게 되어 기쁘다.  런던에 
있을 동안 경제 신탁 통치라는 끔찍한 일을 당한 뒤 너무나도 우울하게 보냈던 
1997 년말의 기억이 다시 떠오른다.  그 때는 정말 나라가 망하는 줄 알았다.
  당선되자 생각나는 분은 1962 년 부산 거제 초등학교 3 학년 때 담임 배 희분 
선생님이다.  동생 재롱에 대한 내 글이 실린 부산시 교육 위원회의 글짓기 모음 
책을 주시며 아버님, 어머님께 보여드리고 가져오라고 하셨다.  집에 가서 책을 
보여 드리는데 왜 그리 부끄럽던지.  처음으로 내 글을 활자화시켜주신 선생님께 
고마운 마음을 알려 드리고 싶다.  반의 모든 애들 글을 모아 학급 문집을 
만드셨고, 한 분단씩 수업 뒤에 남아 선생님을 도우게 하시는 등 모든 애들을 
골고루 사랑하신 참 스승이셨다.  학생에 대한 사랑을 지금도 오롯이 가지고 
계시리라.  스승의 날이면 가끔씩 선생님 생각이 났지만 아직 한 번도 찾아 뵙지 
못했다.  
  템즈강변의 패터슨 할아버지 집에서 마시던 차, 주말마다 런던 구경하느라 타던 
지하철, 기름을 뺀 고기를 빵에 넣은 케밥 (Kebab), 잿빛 하늘, 이층 버스, 아무 
때고 내리던 비, 정 현성, 김 경희 유학생과 얘기하던 런던대의 연구실, 1 년 동안 
살았던 이층 집과 앞길 - 이 모든 것이 너무나 그립고 마치 꿈을 꾸었던 것 같다.
  혹시라도 런던에 대해 잘못 알고 쓴 것이 있지나 않을까 걱정되며, 끝으로 
다듬어지지 않은 글을 뽑아 주신 심사위원님과 국제신문사에 감사드린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