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부호계 (코드) 가 나아갈 길 - 통일되지 않은 코드들
(미래와 얼굴 (대학생 정보지, 2000 년 7+8 월호, LG 애드, 46-47 쪽에 실린 글)
김 경석

1980 년대 후반 상용 조합형과 완성형 주장자들 사이에 뜨거운 한글 부호계 (코드: code) 논쟁이 있었다. 완성형이란 글자마디 (보기: "한", "글") 마다 어떤 수 (부호값) 를 배정하는 방식인데, 보기를 들어 "간" 의 부호값은 45217 이다. 한편, 상용 조합형이란 각 글자 (보기: "ㅎ", "ㅏ", "ㄴ") 마다 어떤 수를 배정한 뒤 글자마디는 각 글자에 배당된 수의 조합으로 나타내는 방식인데, 보기를 들어, "ㄱ" 은 2, "ㅏ" 는 3, "ㄴ" 은 5 이다. 상용 조합형은 요즘 한글에서 조합 가능한 글자마디 11,172 개를 모두 나타낼 수 있는데 견주어, 완성형은 그 가운데 2,350 개만 나타낼 수 있도록 정하였는데, 이것이 완성형의 가장 근본적이고 치명적인 문제이다. 보기를 들어 똠방각하의 "똠" 은 완성형에서 나타낼 수 없다.

우리의 글살이에 지장을 주는 완성형 한글 부호계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결국 1992 년에 상용 조합형을 부호계 표준에 복수 표준으로 넣음으로써 이 논쟁은 정리되었다. 현재 우리의 부호계는, 아래 아 한글 같은 문서 편집기에서는 상용 조합형을 쓰고, 전자 우편 (e-mail) 에서는 완성형을 쓰는 이중 체계이다.

국제 표준화 기구의 ISO 10646 부호계 (=유니 코드: Unicode) 가 1993 년에 나옴으로써 이제 한글 부호계는 다른 국면으로 가고 있다. ISO 10646 은 온 누리의 주요 글자계 (script) 를 거의 다 넣은 부호계인데, 현재의 애스키 (ASCII) 를 대신하여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쓰게 될 것이다. ISO 10646 에는 한글 첫가끝 조합형 글자 240 개와 완성형 글자마디 11,172 개가 들어가 있다. 앞으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현재의 상용 조합형이나 완성형은 점점 적게 쓰고, ISO 10646 을 점점 많이 쓰게 될 것이므로, 완성형 2,350 개의 제약은 저절로 해결된다. 다만, ISO 10646 안에 첫가끝 조합형과 완성형이 둘 다 들어 있는데, 우리 한글이 과학적인 소리글자임을 생각할 때, 앞으로 완성형을 버리고 첫가끝 조합형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한편, 북쪽의 완성형 부호계에 들어있는 한글 글자마디 수는 2,679 개로 남한보다는 많지만, 11,172 를 다 나타내지 못한다는 점에서 남쪽의 완성형과 꼭 같은 결함이 있다. 남북의 부호계가 다르지만, 문서 편집기에서 파일을 읽을 때, 조합형과 완성형 가운데서 고르듯이, 북쪽의 완성형도 고를 수 있게 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 또한, 길게 볼 때 ISO 10646 을 남북이 같이 쓰게 되면 부호계 통일은 저절로 된다.

그런데 부호계의 남북 통일과 관련하여 두 가지 문제가 있으니, 가나다 차례와 한글 로마자 적기이다. 남북의 한글 가나다 차례가 다른데, ISO 10646 부호계의 한글 글자마디의 배열 차례는 남쪽 가나다 차례를 따르고 있다. 북쪽은 ISO 10646 을 다루는 국제 표준화 기구 회의에서 이를 북쪽 차례대로 바꾸자고 제안하였다.

1996 년에 국제 표준화 기구에서 만든 기술 규격 11941 에는 남북의 한글 로마자 옮겨 적기 안이 모두 들어 있는데, ISO 10646 에서 영어로 된 한글 글자마디 이름은 남쪽 안을 따랐는바, 북쪽은 이를 문제 삼기도 하였다. 만일 이 기술 규격이 2002 년까지 국제 표준이 되지 못하면 자동 폐기되므로, 10 여년 남북의 수고가 물거품이 될 뿐만 아니라, 우리 겨레 앞에 큰 죄를 짓는 일이다. 남북이 힘을 모아 기술 규격 11941 을 국제 표준 한글 로마자 옮겨 적기로 만들어야 하겠다.

* 이와 관련된 자세한 자료는 "컴퓨터 속의 한글 이야기" (부산대 출판부, 1999) 책을 참고하기 바란다

(http://hangeul.cs.pusan.ac.kr/hangeul/).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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